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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오락

14. 발더스 게이트3

by 쥬캉 2024.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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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타임: 304시간

뭘로 했나: PC

난도: 균형

 

 

1. 정통 RPG는 불타는 우주선에서부터!

아무튼 발더스 게이트입니다. 1,2는 안 해봤고 가장 좋아하는 D&D게임은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죠.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봤지만 사전지식은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주인공은 뇌에 올챙이(공식 번역)가 들어간 채로 불타는 우주선에서 탈출합니다.

올챙이를 내버려두면 영혼 없는 문어 괴물이 되어 버리니 감염자 중에서 사연 있는 멋쟁이 친구들을 모아서 파티를 만듭시다. 목표는 감염 치료를 위해 꿈의 도시 발더스 게이트로 상경하기. 그 과정에서 겸사겸사 세상도 구하고요.

 

2. 발더스 게이트는 멀고 멀다

이런 과정이 중요한 게임에서는 아무 지식 없이 그냥 내키는 데로 하는 게 제맛입니다. 사기꾼 바드로 시작했으니 북을 치며 현란한 혀놀림을 선보여야겠죠. RPG의 상식은 선함은 보상이 따른다는 겁니다. 죽은 NPC는 추가 퀘스트를 주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모든 세력과 친하게 지내서 평화를 이룩한다는 큰 꿈을 가지고 도시 상경길에 나섰습니다.

도시 입구에 도착해서 모두의 힘을 모으자! 따위의 소리를 들었을 때, 이미 마주친 모든 세력을 전멸시킨 뒤였습니다.

뭔가... 뭔가 잘 안 됬습니다. 말 그대로 모든 세력이 전멸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악의 세력 선의 세력 심지어 중립이나 개인까지. 왜? 항상 선한 선택만 했는데? 물론 사기꾼 바드로서 재미있어 보이는 모욕이 선택지로 나오면 할 수밖에 없고, 경고 팝업을 제대로 읽지 않은 데다가, 이중배신을 치면 양쪽을 속여먹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완전히 틀리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계속 선한... 아마도 그 비슷한 선택만 했는데요.

유쾌한 북소리 뒤에 수 없이 많은 시체의 탑을 쌓은 저는 하는 수 없이 그렇다 나는 사실 살인의 신의 사도였던 것이다를 외치며 몰살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의도는 선했으므로 굿엔딩이 나왔습니다...? 뭐야 이거.

 

3. 중요한 건 과정

보라색 문어 괴물, 마인드 플레이어는 주인공이 피해야할 미래입니다. 올챙이가 머릿속에서 변태 하면 자아와 영혼을 잃고 자유도 없는 뇌 먹는 문어 괴물이 됩니다.

하지만 게임에서 제시하는 마인드 플레이어는 별종입니다. 자아와 자유가 있죠. 그러면 날아다니며 블랙홀 쏘는 겁나 센 촉수 괴물이 되는 거잖아요. 영혼이 없는 건 세계관 내에선 큰일인듯합니다만 사실상 수명이 무제한이 되면 사후세계에 대해선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싶고, 뇌를 먹는 건 근 한 달 새 해치운 도적(틀림없이)의 숫자가 세 자리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큰 문제가 될 거 같지 않군요. 그럼 비용이 얼마죠? 공짜라고? 싸인은 어디다 하나요?

게임에는 양자택일이 자주 나옵니다. 세력과 세력 사이의 선택일 수도 과거와 미래 사이의 선택일 수도 운명과 야망의 선택일 수도 있죠. 이게 계속 누적되기 때문에 다시 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선한 정답은 존재합니다. 만일 사악한 선택을 했다면 뒤에서 엄청 구시렁 거리거든요. 몇 가지 선택은 준법시민이라면 당연히 이래야지 하고 골랐다가 나중에 뭐 저런 이기적인 놈이 다 있냐고 욕을 먹고는 약간의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친한 척하는 문어 친구가 너 좀 합리적이네 라는 말을 하는 건 님 사이코패스네요라는 말을 돌려 말하는 거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죠.

모든 동료들이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대부분의 동료들은 친해진 뒤에 너 좋을 데로 하라고 하면 선한 선택을 고릅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용서하고 기회를 주고, 엄청나게 참견하십시오. 악의 길은 보상도 엔딩도 별로이기 때문에 사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이하게 결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앞에서 무슨 짓을 했건 마지막 순간에 결정을 바꿀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과정입니다. 애초에 처음 플레이 할 때부터 다음엔 어떤 선택을 할까 생각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엔딩에 별 변화는 없지만 과정을 선택하는 건 꽤나 의미가 있습니다. 동료들의 반응성이 좋기 때문이죠.

 

4. 동료들

머리에 올챙이가 들어간 예비 문어 친구들은 모두 기만과 강요로 억압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납치되어 문어가 되는 건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며, 좀 웃기기도 하죠. 그렇지만 올챙이 없이 그대로 살았다면 모두 사이좋게 파국이었으니 새옹지마, 잘 된 일이군요.

동료들이 많은데 파티는 4명(주인공 고정)입니다. 주요 이벤트마다 동료들이 반응을 하는데 때에 따라선 특이한 이벤트가 일어나기도 하죠. 그래서 한 번 플레이로는 내용을 다 볼 수가 없습니다.

캐릭터들은 대부분 매력적입니다. 생긴 것과 첫인사만 보고 괜찮다 싶으면 초장부터 쭉 미는 게 권장됩니다. 로맨스 이벤트가 매우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인데 하하 뭐라는 거야 이 머저리가 라는 대답을 모든 동료에게 했다면 해골바가지의 연민 어린 시선을 받게 됩니다. 뭐야, 나더러 세상을 구하라던 거 아니었어?

재밌는 것은 그냥 봐서 악 성향인 녀석에게 사악한 짓을 하면 화를 낼 수 있고, 그냥 봐서 선 성향인 녀석은 하나 빼고 모든 선택지가 너 멍청하다 ㅎㅎ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 멍청하다 ㅎㅎ는 확실히 상대를 화나게 할 수 있죠. 모든 것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위저드는 거의 모든 선택지가 모욕하는 거라서 꽤 웃겼습니다.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패치로 추가된 캐릭터가 뭔지는 명확합니다. 어떤 캐릭터는 텐트 없이 노숙하고, 어떤 캐릭터는 자기 스토리가 없으며, 어떤 캐릭터는 스토리랑 거의 상관이 없죠. 그래도 다양한 캐릭터를 사용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5. 전투

마음의 평화를 주는 턴제. 너도 나도 원킬 나는 초반이 매우 괴로우며, 중반부터는 수월, 후반에는 이대로 지옥도 정복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화력이 세집니다. 그런데도 한수한수가 중요하긴 해서, 초반의 허튼짓으로 순식간에 전멸하기도, 적의 턴이 돌아가지 않기도 하죠.

가끔 기믹 전투도 있는데 대게 화력으로 어떻게든 됩니다. 비필수 전투는 말 그대로 말로 스킵해 버릴 수 있어서 편리하군요. 분명히 전투 직전의 살벌한 분위기에서 설득에 대성공 한 바람에 흐지부지되면 좀 뻘쭘합니다만.

캐릭터 직업이 워낙 많아서 결국 다 해보진 못했습니다. 전 바드가 아닌 캐릭터로 자기 턴에 끝날 때마다 엉터리 연주로 적들을 괴롭히는 걸 좋아합니다.

 

6. 기타 등등

- 아무렇게나, 사악, 전원 생존으로 3회 차 진행

- 위저드는 웃음벨이죠. 진지한 얘기 할 때마다 빵 터집니다. 정작 빵 터트려본 적은 없어요.

- 잠깐, 승천이 나쁜 짓이었어요? 나쁜 놈을 하나로 압축해서 통수 치는 게 간편하지 않나요? 아니 아무도 그렇게 사이코는 아니라고??

- 신이 되는 것도 나쁜 짓이야? 물론 꽤나 웃기는 꼴이긴 합니다만.

- 세계정복의 로망을 잘 알고 있군요. 그래, 정확히 그 짓을 하려고 했어!

- 사악한 유머가 마음에 듭니다. 선택하면 앞으로 너랑 연을 끊겠다 싶은 선택지가 너무 재밌어 보여서 누를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물론 눌렀습니다.

- 친한척하는 보라색 문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만, 마지막에 지 편 안 들었다고 삐지는 건 대체 뭐야.

- 버그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여르기어 영입때는 3회 플레이 모두 대성공이 떴습니다. 이게 기능이 아니라면 제 영혼의 오르톤은 이 녀석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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